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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목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장 1절)

조회
: 54
작성자
: 최재원
작성일
: 22-06-15 09:20 트랙백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는 많은 교회가 있어요. 이 교회들은 모두 예수님의 생애와 또는 성경의 이야기와 관련된 교회들이에요. 특별히 예루살렘 성 맞은편 감람산에는 예수님과 관련된 많은 교회가 많은데, 오늘 특별히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교회는 눈물교회에요. 교회에 들어가서 창문으로 바라보면 예루살렘 성이 보여요.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이 자리에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을 흘린 장소라고 해서 눈물교회라고 불려요. 예수님께서는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란 무엇일까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살아가고 있었어요.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수투스, 옥타비아누스라고도 하지요. 그는 막대한 힘을 가지고 온 세계를 로마가 다스리는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려고 했어요. ‘로마가 세우는 평화’(Pax Romana)를 강조하였던 아우구수투스황제! 그는 힘없고 작은 나라들을 점령한 후에 전쟁 없는 세상을 선포하면서 로마로 인하여 평화가 이루어졌다고 했어요.

아우구수투스 황제는, 그가 통치하던 40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에 이르는 넓은 제국에서 더 이상 전쟁 없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어요. 대부분 역사가들이 인정하듯, 이 시기는 그의 정치 슬로건인 팍스로마나, 로마에 의한 평화가 진행되던 시기였어요.

아우구수투수 황제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일까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하는 Pax는 법적으로 전쟁을 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해요. 강한 힘으로 전쟁을 제어할 수 있을 때 생기는 평화에요. 즉 팍스 로마나는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평화예요. 그렇기 때문에 힘을 가진 사람들은 평화로울지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은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지만 강한 힘에 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기에 잠잠해 보이는 평화였어요. 과연 이것이 진정한 평화였을까요? 온 인류가 원하는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샬롬이에요. 이 말은평화란 말과 같은 말이에요.(화평의 히브리식 의미=‘샬롬한글 성경에서 평화, 화평, 평안, 평강으로 번역) 인사할 때도 하나님의 평화가 당신에게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샬롬이라고 인사해요.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이란 말도 샬롬에서 왔어요. ‘평화의 도시란 뜻이에요. 그런데 예루살렘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평화가 없어요. 인사는 평화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화평이 없어요.

예루살렘 성전은 여러 개의 담이 있었어요. 성전 뜰은 맨 가장자리에서부터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제사장의 뜰로 구분되어 있었어요.

유대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방인의 뜰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었어요. 이방인의 뜰과 여인의 뜰 사이에는 담이 세워져 있었어요. 이 석판은 예루살렘 성에서 고고학자가 발굴한 석판이에요. “이방인은 더 이상 더 들어가면 즉시 죽임을 당하리라고 경고한 문구에요. 기록에 의하면 성전 뜰에 세워진 벽에 일정한 간격을 따라 붙여났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만 선택하신 백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유는 다른 민족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율법을 지키는 민족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이라며 싫어했어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방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같은 민족이나 다름없는 사마리아사람들도 개처럼 취급하며 만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사람들이 살고있는 동네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이렇게 이방인과 유대인, 사마리아사람과 유대인 사이에는 막힌 담이 있었어요. 그래서 서로 미워하고 꼴도 보기 싫어하고 원수같이 지내는 것이에요. 이런 것이 있는 이상 평화를 이룰 수 없어요.

그런데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담을 쌓고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마음속에 미움과 싸움, 질투, 시기, 욕심, 교만 이런 담들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이런 담을 쌓으면 꼴 보기 싫은 사람 안 봐서 좋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나 혼자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여러분,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나 외의 다른 사람이 망해야 한다. 혹시 이런 생각 하는 친구들은 없겠지요? 내 맘에 안 들고 나에게 거슬리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이 세상에 평화가 올까요?

이런 것들이 있는 한 참된 평화를 이룰 수 없어요. 성경은 이런 것들을 가리켜 죄라고 말해요.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되게 만들어요.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어요. 우리가 친구들 사이에 싸움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내편 네편으로 나누는 것은 바로 죄 때문이에요. 우리 사이에 담을 쌓게 만드는 것도 바로 죄 때문이에요. 더 나아가 죄는 나라와 나라가 싸우게 만들고 전쟁을 하게 만들고 원수되게 만들어요. 우리나라도 북한과 같은 민족이지만 휴전선이라는 담을 사이에 두고 원수같이 지내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평화에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낮은 자로 오신 예수님은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대며,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함께 가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원수를 이기려고 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누구나 다스리기를 좋아하고 섬김을 받기를 좋아하지만, 자신은 이 땅에 종이 되어 섬기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어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의 죄를 용서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죄에 억눌려 있던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세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평화는 이런 것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평화, 사랑과 용서, 그리고 낮아짐으로 세워지는 평화에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평화에요. 하지만 이런 것과도 비교 할 수 없는 놀라운 평화가 하나 더 있어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서 하나님과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신 평화에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 담을 쌓고 이방인들이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막은 이유는 율법 때문이었어요. 이렇게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율법이라는 담이 있었어요. 율법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될 수 없도록 만들었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셨어요.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2:14~18)라고 말씀해요.

유대인만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유대인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하셨어요. 똑같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모든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 주신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남자나 여자. 어떤 피부색을 가졌든지, 어느 나라에 살든지, 나이가 몇 살인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우리 친구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어떤가요? 혹시 다르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게 담을 쌓고 살아가는 친구들은 없나요? 사는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남자와 여자라는 이유로,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담을 쌓고 살지는 않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모든 담을 무너뜨리고 하나로 만들어 주는 힘이 있어요.